[기타] “맹물로 조리해 주세요!”…비건 옵션 없다면 우리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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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비건탐식단
“사장님, 콩나물국밥 맹물로 좀 끓여주실 수 있나요?”
“비건 식당이 없다” “도무지 외식할 곳이 없다” 한탄하던 광주의 비건 지향인들은 어느날 새로운 관점으로 이 문제를 대하기로 했다.
‘직접 가서 먹을 게 있는지 알아보면 어떨까?’
※비건(
vegan
)
동물에게서 나온 식재료를 섭취하지 않고 동물의 부산물을 이용해 만들거나 동물실험을 거쳐 제조한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생활방식 또는 이런 생활방식을 지향하는 사람.
광주비건탐식단이 발굴한 광주지역 중식당의 비건 중식 메뉴들. 육류, 해산물, 계란 등 동물성 재료를 빼고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광주비건탐식단 제공
식당을 찾아 다니며 육류, 해산물 등은 빼고 조리해 줄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원칙은 ‘내돈내먹’(후기를 작성할 목적으로 음식을 사 먹되 전 과정을 협찬·후원 없이 자비로 진행함). ‘비건 식당’ 간판을 내걸지 않아도 재료만 조절하면 비건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 적지 않았다.
지난 4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광주 비건탐식단’ 얘기다.
이들의 구심점은 광주 송정동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쓰레기 배출을 줄이기 위해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음) 카페였다.
환경을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이들이 오가다 보니 자연스레 교류가 이뤄졌다고 한다.
비건 지향인들이 머리를 맞대 활동을 구상해 현재
10
명 정도 되는 인원이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을 기반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느슨하게 연대하고 있다.
발품을 팔아 취재한 내용은 인스타그램 ‘광주 비건탐식단’ 계정(@ vegantamsikdan )에 올린다.
‘광주·전남·전북 비건 옵션 가게 지도’ 페이지도 만들어 누구나 정보를 추가할 수 있게끔 열어 뒀다.
활동에 참여 중인 희복(
29·
이하 활동명), 민김이(
22
), 찡찡이(
37
)와 지난달
28
일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 비건탐식단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요.
희복 = 광주에 비건 전문 식당이 아주 드물거든요. 서로 ‘외식도 너무 힘들고 요리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고민을 털어놓다가 어느 분께서 ‘식당에 가서 먹을 게 있는지 찾아보면 어때요’ 하셔서 그때부터 활동 방향을 논의했어요.
민김이 = 저는 전에 밥을 거의 밖에서 안 사먹었어요. ‘여기는 서울이 아니라 광주다, 맛의 고장이라는데 비건 식당은 없어도 너무 없다’ 하면서 체념했거든요. 비건 식당을 발굴하는 일을 벌인다기에 ‘무조건 참여해야겠다’ 싶더라고요.
-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군요.
희복 = 그렇죠! 첫 기획회의에서 굿숫집 얘기가 나왔어요. 송정시장에 유명한 국숫집이 한 군데 있는데요. 근처 김대중컨벤션홀에서 국제 회의가 열릴 때마다 많은 외국인이 방문하는데, 비건이거나 종교적 이유로 채식을 하는 분들에게 광주시가 추천하는 맛집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데를 많이 알아내 공유하면 되겠더라고요.
비건 옵션으로 조리 가능한 메뉴가 있으면 운영자의 동의를 받아 ‘비건 가능’ 스티커를 붙인다. 광주 비건탐식단 제공
우선 사비를 모아 ‘비건 가능’ 스티커부터 찍었어요.
그리고 식당에 가서 부탁을 드려 본 거죠. 예컨대 콩나물국밥을 먹을 때는 “맹물로 조리해 주세요” 하고 “수란은 빼주세요” 요청해요.
식당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면 “다른 비건들이 왔을 때 이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스티커를 붙여도 될까요” 하고 물어벡멧.
점주님이 허락하시면 스티커를 붙여드리거나 직접 붙이실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어요.
비건탐식단 계정에는 이용 가능한 식당 정보와 함께, 주문시 유의할 사항이 상세하게 공유돼 있다.
국밥이나 전골류는 채수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 ‘맹물 조리’로 요청하도록 안내한다.
고명이나 밑반찬 가운데 거절해야 할 것도 꼼꼼하게 표시했다.
비건식 국밥 주문 방법을 안내한 인스타그램 게시물. 비건탐식단 제공
- 그런데 맹물로 조리하면 맛이 괜찮은가요?
민김이 = 사장님들도 그 말씀을 많이 하세요. ‘맛이 없을텐데…’ 하며 고개를 갸웃갸웃 하시고…. 멸치 육수 대신에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하면 채소의 맛이 우러 나와서 오히려 깔끔한 맛이 나기도 해요.
- 이런 시도를 환영하는 식당도 있나요?
희복 = 현지 분들이 운영하는 베트남식당이 기억나요. 방문해서 여쭤 보니 “베트남에 채식 문화가 굉장히 발달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채식 기간도 있다고 해요. (베트남에는 불교에 기반을 둔 윤리의식과 신념에 따라 채식을 하는 사람이 많다. 불교 신자들은 매월 음력 1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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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특정 기일 등에 채식을 하기도 한다.) 모닝글로리볶음밥과 반쎄오(베트남 전통 부침개의 일종)를 비건으로 조리할 수 있다고 안내해 주셨어요. “반쎄오엔 계란이 들어가는 거 아닌가요?” 하고 여쭤 보니 “쌀가루와 물과 강황만 넣어도 된다” 하시더라고요. 속재료로 들어가던 해산물을 빼고 채소만 볶아 속을 채워 주셨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 특별히 난이도가 높았던 식당은요?
민김이 = 그건 사장님 따라 다른 것 같아요.(웃음) 제가 자주 가던 청국장집이 있는데요. 이 집은 원래 채수를 써서 굉장히 비건 친화적인 식당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밑반찬에 젓갈이 들었는지 여쭤봤더니 “이것도 빼고 저것도 뺄 거면 나와서 먹으면 안 된다” 하시더라고요.
희복 = 이전에 채식주의자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으셨던 것 같아요.
찡찡이 = 순간 정적이 흘렀죠. “그럼 저흰 나와서 먹으면 안 돼요?” 하니 사장님이 웃으시면서 분위기가 풀리긴 했는데, 이런 반응이 채식인을 대하는 대다수의 시선을 잘 반영하는 게 아닐까 해요. 다양성을 존중하고 채식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게 되겠죠?
광주의 한 베트남 음식점에서 동물성 재료를 빼고 만든 반쎄오. 광주비건탐식단 제공
- 세 분은 어떻게 채식을 하게 되었나요?
민김이 = 저는 대안학교에 다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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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때 수업에서 공장식 축산에 대해 처음 알게 되면서 채식을 선언하게 됐어요. 그 전에는 고기를 정말로 좋아했거든요. 채식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스스로 좀 편견이 있어서 ‘그렇게까지 가려 먹으면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까’ ‘인간관계도 다 끊어지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편견이 제 안에서 깨지는 걸 느끼고 비건을 지향하게 되었어요.
희복 = 저는 6월이면 비건을 지향한 지 딱 1뇬 이 돼요. 지난해 3월에 보선 작가의 를 인스타툰으로 접했어요. 여기 젖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우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강제 임신과 강제 착유를 끝없이 당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보고 ‘우유를 먹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반려동물이 죽는다고 살점을 뜯거나 구워먹지 않는데 정성스럽게 키운 소와 닭과 돼지는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관점이 옳은 것인지 다시 고민해 보게 되었고요.
찡찡이 = 저는 두드러기가 자꾸 나서 붉은 고기를 끊은 게 계기였어요. 지난해 1뇬 동안 페스코 채식(육고기는 피하고 알과 젖, 해산물은 섭취하는 방식)을 하던 중에 김한민 작가의 을 읽고 윤리적 채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요. 정신을 차려 보니 제 식단이 해산물에 너무 쏠려 있더라고요. 지난 4월부터 해산물도 끊고 비건을 지향하기로 했어요. 처음엔 실패가 두랠몸서 ‘1달 도전’을 목표로 했는데, 해보니 ‘그동안 왜 안 했지?’ 싶을 만큼 좋더라고요. 동물 착취와 기후위기 문제를 알면 알 수록 마음이 너무 무거웠거든요. 이전 식단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광주비건탐식단이 만든 ‘광주·전남·전북 비건 옵션 가게 지도’ 페이지. 누구나 관련정보를 추가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광주비건탐식단 제공
- 비건탐식단 활동에서 어떤 즐거움을 느끼나요.
희복 = 스티커를 붙이는 장소가 늘어날 때마다 도장깨끼 하는 느낌 있어요. 게임에 비유한다면 퀘스트를 깨고 레벨업하는 재미랄까요? 평소 서울과 광주의 인프라(기반) 차이를 많이 느끼거든요. 지역에서 비건을 실천하는 게 더 쉬워졌으면 좋겠어요.
민김이 = 탐식단 활동을 하면서 저 스스로도 많이 긍정적이 됐어요. ‘우리가 채식을 많이 이야기해야 문화가 바뀌겠구나,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일당백을 하려고 합니다. 광주에서 저희가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찡찡이 = 비건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과 편견 같은 것을 어떻게 깨 나가면 좋을지 많이 고민해요.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료가 생긴다는 것이 신나요.
희복 = 어느 식당에서든 안심하고 고를 수 있는 비건 메뉴를 2개 정도는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우리 지역에 비건들이 많이 있고, 비건들의 외식 수요가 있다는 걸 꾸준히 보여주다 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32&aid=0003077534
피곤하네요 ,,